닮고 싶지 않아도 닮아버린

2007. 05. 28.

블로그가 한창 부러워 보였던 시절은 사실 유명 포탈들에서 블로거를 상대로 한 서비스가 우후죽순 나오는 지금이 아니고, 2002~3년 즈음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때는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블로거에 대한 관심은 있었을지 몰라도, 아마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기다리지 않았을까. 이제 돈이 될 것 같고, 흥행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어 블로거들을 띄워주기 바쁘다.

좀 늦게 블로깅을 시작했던 탓에,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블로거를 보고서 시작한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선배 블로거의 모습을 조금씩 닮았다.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 있어서, 후배들은 단지 그들이 갔던 길을 가는 까닭에 닮아간다. 시행착오를 겁내는 사람들은 잘 다져진 길을 걷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편한 길을 걸으면서 좀더 좌우를 둘러보기 위해서라는 첨언은 사실 핑게일 것이다. 만약 블로그에서 예술적 기질을 내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서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니그로폰테가 ‘Being Digital‘이란 독창적인 책을 10년 전에 펴냈던 것은 그가 ‘난독증’ 탓에 책읽기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블로그 이웃들은 모두 어떤 면에서는 나의 스승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글쓰기, 시선들에서 블로거는 이래야 한다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느꼈고, 하지만 그것은 유쾌한 가르침만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자주 가던 블로그의 모습을 닮아버렸다는 사실을 메타 블로그라는 망망대해에 나와 보고서야 알았다. 게다가 계보를 따져보면, 수많은 블로거들이 하루키, 애플, 구글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나의 블로깅은 동네 견공만도 못한 혈통을 지녀버렸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블로그를 시작할 때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블로그를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채로 블로깅을 시작했어야 했다. 트랙백이 뭐고, 코멘트가 뭐고, 스킨이 뭔지 알기 전에.

첫 포스팅 글로 “블로그? 써보니 신기하네” 라는 채색되지 않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유로운 블로거‘를 닮고 싶다.

- 가즈랑

닮고 싶지 않아도 닮아버린 & 대화들

  1. #

    nova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이 이야기가 남들의 관심을 끌까\'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돌이켜보면 2002년에 인터넷 한 구석에 숨어 투덜거리던 제가 더 저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RSS를 구독하는 사람도 없었고 메타사이트가 보내주는 방문자가 없었던 그 시절엔 나름 솔직했던 것 같거든요. 채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에 끌려 긁적거렸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2007. 05. 28.
  2. 좀만 더 길게 쓰시지.. : )
    한참 빨려들어가서 읽다가 끊겨서.. 몹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블로깅의 자율성이란게..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자유롭게, 자기의 색으로.. 라기 보다는 요즘은.. 자기로 향한 욕구와 타인에게 향한 욕구 사이의 \'긴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것 역시도 모두 자기에게 향한 욕구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요. ^ ^;

    p.s.
    구글, 애플..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하루키가 주류(?) 블로그 문화의 삼대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ㅎㅎ
    재미있는 지적이시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너무 과대평가된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판단표준이 \'노르웨이\' 하나뿐이긴 하지만요.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는 꽤 재밌게 읽었는데.. ㅎㅎ 읽은 책이 달랑 두 권이라서.. 역시나 좀 판단자료가 미흡하긴 하네요. : )

    항상 가즈랑님의 글을 읽으면 저 자신 글을 쓰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이 글 읽으니.. 예전부터 간단히나마 쓰고 싶었다던 해롤드 블룸의 \'영향의 불안\'에 대한 단상을 끄적거리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별로 아는 것도 없긴 하지만요. ^ ^ 2007. 05. 28.
  3. 민노씨의 소개로 왔습니다. 저도 비주류로써 공감가는 부분이 많네요. 잘읽고 갑니다. 하루키는 좀 의외네요. 하루키는 블로그보다는 싸이질할때의 주된 소재는 아닐런지 :) 2007. 05. 28.
  4. #

    nova

    가즈랑님의 반론(?)이 없네요. ^^;
    제 기억에 이글루스에선 하루키가 꽤 유력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꽤 오래 전에 이탈했기 때문에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2007. 05. 28.
  5. #

    nova

    근데 올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이 미니멀한 스킨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사람을 그냥 차분하게 만들어 버리네요. 문득, 스킨은 그 사람 성격 따라간다라는 이론을 세우고 그걸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2007. 05. 28.
  6. #

    가즈랑

    저는 아직 글 100개, 블로그 1년도 채 못 쓴 터라, nova님처럼 오래도록 글을 쓰신 분들의 경험에 한참 못미칩니다. 그래서 비록 고민을 써보긴 했지만, 그 깊이는 얕다 못해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요. 게다가 블로그를 보는 시선이 없다해도 솔직해질 수 있을지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안에 자리한 시선, 그리고 자기검열을 없애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데 잘 될 수 있을지..

    들러 주셔서 감사하고, nova님의 초기 글에 대한 소회 잘 들었습니다.^ ^ 2007. 05. 28.
  7. #

    가즈랑

    민노씨의 말대로 블로깅의 자기 만족의 측면이 분명 강한 거 같습니다. 요렇게 참회기도같은 글을 쓰고 나니 뭔가 개운한 맛도 나는군요.ㅎㅎ (천주교나 기독교의 고해성사가 실제로 용서받는다는 의미보다는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효과가 많은 것처럼요.)

    민노씨의 바램처럼 글을 좀 길게쓰고 싶은데, 제가 긴 글을 원체 못쓰고 중구난방 되버립니다.(이런 걸 필력이 무지 딸린다고 표현하데요.^^) 아직은 초보 딱지 안떼었으니 좀 봐주세요. :D

    덧) 하루키는 사실 주류 블로거의 아이콘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고, 많은 블로거들이 \'도서문답\'에서 말하는 것을 보고 그의 영향력에 놀랐을 뿐입니다. 저도 몇권 읽지 않았고, 논할 만큼 알지 못합니다. 다만 생일 선물마다 그의 책을 건네는 친구들을 보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서요. 해롤드 블룸이란 분은 처음 들었는데 또 뭔가를 던져주시는군요. :) 2007. 05. 28.
  8. 블로그는 하나의 도화지와 같은 것 같아요. 흰색 도화지위에 하나 하나 자신이 느낀 대로 채워나가는 것인지라 가끔은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는 법이고, 주변의 영향에 의해 점점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해지기보다는 복합적인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초기에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할까 하는 식의 고민은 누구나, 어디서나 그리고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본래의 색깔을 잃어가는 것인데.. 팔레트에 뿌려져 사용된 물감들을 깨끗이 물로 씻어내는 것처럼 가끔은 자신의 블로그에도 물갈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D 2007. 05. 28.
  9. #

    가즈랑

    그로커님 비주류가 아닌 것은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충성스런 RSS 애독자를 많이 갖고 계시니^ ^) 사실 저는 주류, 비주류 블로거라는 구별이 좀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해요. 수면 위로 많이 드러나있고, 또 그러려고 노력하는 블로거는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겠지만 그가 곧 주류 블로거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처럼요.
    되려 그로커님처럼 짧으면서 솔깃한 이야기가 더 매력있습니다. :D 2007. 05. 28.
  10. #

    가즈랑

    생각,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주저앉아버렸어요. 늦게나마 답글 적습니다.^ ^;; 이글루스는 제게 멋진 블로거들의 고향으로 기억됩니다. 몇몇 블로거들에게 하루키는 그들의 외피를 꾸며주는 소품이이었고요. 글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블로그란 공간에서 하루키라는 이름은 좋은 아이템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진짜 하루키가 아닌 이상 그 화장은 금방 벗겨졌겠지만.

    요즘은 이오공감2.0에서 이슈가 떠오르던데, 어느 날부터인가 메타 블로그는 잘 안가고 있어요. 정보 과잉의 혼란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_-;; 2007. 05. 28.
  11. #

    가즈랑

    이 스킨은 다른 분(Cory Miller)이 만들어놓은 Minimalism이란 테마를 이것저것 많이 빼고, 수정해서 만들었습니다. 잘 모르는데 수정하려니 참 어렵더라고요. 제가 밑바닥부터 만들었다면 조건없이 배포할 수 있을 텐데 그간 설치한 각종 플러그인과 한몸이 되버려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아거님이 연재한 워드프레스 테마 만들기를 공부한 적이 있어 기본적인 작법은 익혔습니다. 언젠가(^ ^)는 요것을 좀더 간소하게 꾸민 테마를 만들고픈 희망은 있습니다. 다른 분이 이곳에서 힌트를 얻어 더 멋진 테마를 만드실 수도 있는 거고요.

    댓글을 보니 예전 제가 1학년 때 듣는 음악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말도 안 되는^ ^) 결론의 보고서를 썼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nova님의 이론도 즐거운 증명이 될 듯합니다..

    덧) 미술품을 보는 심미안은 완전 꽝이지만, 단순이즘(Minimalism)과 관련한 것에는 눈이 먼저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스킨에 대한 말씀 감사합니다. 2007. 05. 29.
  12. #

    가즈랑

    도화지에 대한 비유 참 잘 어울립니다. 제 블로그를 하얗게 꾸민 것도 나름대로 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종이와 프레임만 만들어놓으면 나만의 체험을 술술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쓰게 되니 남의 시선과 글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데요.^ ^; 그건 사실 좁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투정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지요.

    지금은 솔직히 저만의 색깔 이런 욕심은 버렸습니다. 무채색의 날것을 그대로 적어보려고 해요. 되도록이면 남이 보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적고 싶어졌어요. 2007. 05. 29.
  13. 블로그 뿐만 아니라 뭘 하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따라하고 싶은 사람의 스타일을 따라가되, 그 중에서도 치열하게 독창적인 variation 을 가하려고 노력하는 것. 뭐, 말은 쉽고 행하는 건 어렵지요 ^^; 2007. 05. 30.
  14.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다른 분들 글들 보고 따라하고 싶어했고 그러려고 부던히도 애썼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에라 모르겠다 맘대로 하자고 한게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즐거워야 블로그도 오래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싶거든요.
    지겨운 일이고 부담되는 일이라면 3년 가까이 하지도 못했을 거에요^^ 2007. 05. 31.
  15. 한국에서 달아주신 답글이죠? (한라산은 잘 다녀오셨는지..^ ^) 이 문제는 사실 고민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변주(variation)에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겠네요. 저는 지금까지 독창적이라고 불릴 만한 삶을 살지 못해서 더 뭐가 맺힌 게 있는지도 몰라요. 이 공간에서라도 제가 자유롭게 생각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 2007. 05. 31.
  16. 나무피리님의 글들을 보면, 솔직하고 나즈막히 옆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읽으면 참 좋아요.(단순히 좋아요라는 표현밖에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만큼의 글을 매일매일 쓰는 에너지도 부럽고요. 2007. 05. 31.
  17. 하루키, 애플, 구글에 별 관심 없는 \"동네 견공만도 못한 혈통\"을 가진 블로거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 (웃음)
    필력이 딸린다고 하시지만, 짧고 간결하게 하실 말씀 다 하시는 가즈랑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매번 이상한 소리만 하고, 중구난방 부대찌개(ㅡ,.ㅡ) 블로그를 지향하는 저보다야 훨씬 나으십니다. 흑흑.

    저도 자유로운 블로거, 아니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생각이 자유로우면 블로깅도 자유롭게 할 수 있겠죠. ^ ^; 2007. 06. 1.
  18. 블로그 이웃분들께서 한마디씩 해주시니 기운이 나네요. 히치하이커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겸손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 ^ 저는 히치하이커님의 음반 소개를 볼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음악을 많이 들으신 분이고, 또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어디서도 듣기 힘든 소개글을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저런 말씀 감사합니다. ^ ^ 2007. 06. 1.
  19. 저희 아버지의 졸업논문이 베토벤의 음악이 독일국민성에 미친 영향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음악에 따라 사람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대화내용에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한마디 남겼습니다. ^^ 2007. 06. 1.
  20. 달린 댓글만 봐도 가즈랑님은 이미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블로거세요. 저 또한 블로고스피어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만났던 선배블로거의 색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살을 치루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내 블로그가 있다는 자존감은 조금 가지고 있어서 즐겁습니다.
    + 20대 초반 하루키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지금은 하루키 없이도 잘 삽니다. ^^ 2007. 06. 1.
  21. 놀랍습니다. 제가 그때 Y군님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참고문헌으로 일독해볼 수 있었을 텐데요.^ ^ 그나저나 어떤 내용일지 궁금합니다. (저는 보고서를 쓸 때 막막한 느낌이었거든요.) 2007. 06. 1.
  22. 좀더 노력하는 블로거가 되어야겠어요. 요즘은 통 머리속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힘들고(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이지만),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짓누르기도 하고..
    Y군님처럼 삶 자체가 좀 독특했으면 하는 바램도 한구석엔 있습니다. ^ ^ 2007. 06. 1.
  23. 성공을 만드는 공통분모...

    최근 비행기와 기차 여행 중 두 권의 책을 들고 와서 읽었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몰스킨에 빼곡히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몇 가지 법”류의 .... 2007. 06. 9.
  24. 블로그도 결국 웹페이지.
    웹페이지를 만들고 구성 하는데에 있어서 한계점이 있죠

    결국 읽고/쓰기 가장 편한 구성으로 되어 버리더군요 2007. 06. 11.
  25. 그렇지요. 웹 전문가가 아닌이상, 어느 정도 넘어서니 더 손댈 수 없는 곳이 보이더라고요. 디자인 부분도 그렇고. 게다가 상업적인 곳도 아니고 맘에만 들면 되기(^^) 때문에 쉽고, 편한 곳으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2007. 0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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