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물생심

2008. 01. 19.

매킨토시를 사용하게 되면 여러가지 유혹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가히 돈 잡아먹는 기계라고 할만 합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뛰어난 코코아(Cocoa) 응용프로그램을 구입하고 싶고, 맥의 독특한 디자인에 어울리는 (상대적으로 비싼) 주변기기를 쓰고 싶어집니다. 아, 음악도 iPod으로 들어야 하고요. :) 그중에도 가장 강력하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은 새로 출시된 기종을 써보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합니다.

사실 맥의 운영체제 Mac OS X 자체는 구기종이나 최신기종이나 비슷한 체감속도로 돌아갑니다(초기 버전의 OS X에서는 얘기가 달랐지만). 물론 큰 데이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높은 그래픽 성능이 필요한 작업을 한다면 ‘해당 프로그램‘의 속도는 다르겠지만요. 이런 이유로 일반 맥 유저들은 OS X의 인터페이스 개선과 하드웨어 외관 디자인의 변화에 더 주목하지, CPU의 클럭 숫자에는 크게 연연하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PowerPC칩을 사용할 당시 애플사가 사용자들에게 주장했던 Megahertz Myth의 영향도 한몫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통적으로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뛰어난 성능의 맥보다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가진 맥에 더 환호하고 지지를 보냈습니다. 외관상의 큰 변화가 없이 Napa(Core Duo)에서 Santa Rosa(Core 2 Duo)로 메인보드 플랫폼이 바뀌어도, 맥 유저들은 크게 새로 구입할 욕구를 느끼진 않습니다. 다만 여러 루머사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소문들을 듣고, 다음 개선판을 기다립니다. 두마리 토끼, 즉 ‘성능‘과 ‘디자인‘의 개선이 이루어진 맥을 구입하려는 영리한 소비자들인 것이죠.

이 영리한 맥유저들은 성탄절 시즌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웅크리고 있으면서 다음해 1월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루머사이트에서 들었던 ‘어떤 대단한 녀석‘에 관한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죠. 사실 맥월드를 기다리는 유저들은 이미 실루엣이 드러난 ‘대단한 녀석‘보다는 잡스가 꽁꽁 숨겨놓은 One More Thing을 더 간절히 원하긴 하지만 말이죠.

이번에 맥북 에어(MacBook Air)가 나온 뒤 여러 말이 무성합니다. 대부분은 환호·놀라움의 반응들이지만, 기대 이하라는 의견들도 많이 눈에 띕니다. 제게는 이런 의견들의 차이가 사용자들의 재정상황(a)·맥의 보유유무(b)·서브 노트북의 필요성(c) 등의 요인 때문에 많이 좌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들은 맥북 에어의 높은가격(a’)·ODD의 부재(b’)·낮은성능(c’)을 사용자 쪽에서 바라봤을 때의 요소들입니다.1 결국 맥을 만났을 때의 상황이 어떠느냐가 사실상 선호의 차이를 주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당장은 맥북 에어에 초연한 맥유저일지라도 점차 구입한 사람들의 사용기와 멋지게 찍은 사진들이 올라오면 귀가 솔깃해지고 눈이 즐거워집니다. 그리고 한번 구경만 해보자 하고 들른 체험센터에서는 결국 스티브 잡스의 강력한 현실 왜곡의 장(RDF:Reality Distortion Field)에 그대로 포획되고 맙니다.2 이 과정을 딱히 설명할 과학적인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이건 체험으로 터득한, 무심한 맥 유저가 새로운 맥을 구입하게 되는 ‘정해진 수순‘이니까요. 참고로 많은 맥유저들은 새로운 맥이 출시되면 웹에 올라온 (아무리 잘 찍은)사진들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는 평을 하곤 합니다.

전혀 새로운 컨셉의 디자인은 마치 한약과도 같아서 처음에는 쓰게 느껴지지만, 결국 그게 몸에 좋다고 자기 암시를 걸게 됩니다. 비록 한두가지 ‘중대한’ 결점을 이유로 반대를 했더라도, 더 많은 수의 ‘사소한’ 필요를 이유로 구입하게 되는 겁니다. 이 견물생심의 교훈은 21세기에 더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아무래도 이미지들의 현란한 축제 때문인 듯합니다. 그저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

1 ODD가 없더라도 Remote Disc라는 기술이 있어서 맥이 아닌 PC가 있더라도 디스크를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맥북 에어 구매자들은 애플제 전용 수퍼드라이브를 구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2 저는 ThinkPad T42가 있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

- 가즈랑

견물생심 & 대화들

  1. 맥을 사랑하시는 가즈랑님께서도 역시 맥북에어에 대한 포스팅을 하셨군요. 제 개인적으로는 맥월드로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었는데 이번 신제품 발표와 더불어 오히려 주춤 하고 섰답니다. 새로운 컨셉들이 오히려 진입장벽을 만들어 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울타리 안에는 멋진 세상이 있지만 쉽게 들어올 생각은 말라는 잡스 아저씨의 자신감 있는 메시지로 들리네요. =) 2008. 01. 19.
  2. 전 그래서 \'사소한\' 필요를 물리치기 위해 \'중대한\' 결점을 찾으려고 항상 노력합니다. MBA의 경우엔, OSX 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T40이 있고 돈은 없기 때문에 안전한 듯 합니다ㅠ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요) 2008. 01. 19.
  3. 이번 맥북 에어만큼 Targeting이 명확한 제품도 없는 듯 합니다. 정말 애플에서, 아니 잡스 아저씨가 생각한 서브 랩탑의 개념을 사용자들에게 전파하여 거기에 말려든(!?) 사람들은 구입하게 되는 그런 수순을 밟게 되겠지요. :)

    그나저나, 현실 외곡의 장은 위키피디아에도 등록되어있을 정도로군요!!! 2008. 01. 19.
  4. 음.... 서브 랩탑 치곤 너무 비싼 것 같아요.
    만약 가격만 싸다고 하면 많이 팔릴 것 같은데....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덧쓰기.
    그래도 현실 왜곡의 장은 어쩔 수가 없어요...ㅠㅠ 맥북 에어.... 2008. 01. 19.
  5. Y군님 // ThinkPad를 쓰면서도 매킨토시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가봐요. 하지만 요즘 나오는 제품들 특히 Intel Mac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정이 가지 않는 것을 보면..예전의 매킨토시가 더욱 그립기도 합니다. 특히 OS 9까지의 맥 말이죠. 그때는 맥월드에서도 맥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요즘 잡스는 너무 장사하는데 관심이 많아 보여서요. ^ ^; 2008. 01. 19.
  6. polarnara님 // OS X을 아직 안써보셨다면 한번쯤은 꼭 써보시길 바랍니다. 특히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시는 분들께는 이것이 참 오묘한 X 윈도우라는 점이 매력적일거에요. 거의 관상용 OS인데다가 하드웨어까지도 단순함을 추구하는 아주 독특한 녀석이거든요. 2008. 01. 19.
  7. 자유님 // 아 자유님은 이것이 분명한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PC 스위처들을 위한 제품은 아니고, 기존에 맥을 한두개 가지고 있는 사용자들을 노리고 나온 제품같아요. ^ ^; RDF는 원래 스타트랙에 나온 말이라서 더 유명세를 탔다고 하네요~ 2008. 01. 19.
  8. 피엡님 // 그렇죠. 제품 자체는 정말 놀라운 외관을 가졌는데, 가격표는 정말이지 쉽게 다가가기 어렵네요. 어쩌면 혁신적인 외관에도 불구하고 높은 가격 때문에 실패했던 PowerMac G4 Cube도 떠오르고요. 초기 호빵맥처럼 가격과 디자인을 모두 잡은 제품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2008. 01. 19.
  9. 저는 맥북도 있고 씽크패드 T42도 있는데도 공기북(air)가 탐이 나는걸요. ^^; 2008. 01. 21.
  10. FineApple 님 // \'다다익선\'이라는 조상님들의 말씀도 맞는 말 같아요. :) 2008. 01. 21.

↑ 본문으로 가기

댓글 작성 후에는 수정할 수 없으니 '미리 보기' 기능으로 입력될 내용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