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가지 밤
책 제목만 보면 유럽 어느 젊은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들립니다. 밤에 대한 이 감각적인 표현에서 어딘가 발랄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일곱가지 밤을 떠올린 작가는 200년도 훨씬 전에 살다 간 조선의 ‘이옥’(1760~1815)이란 선비입니다. 이 책은 PrinceAB님의 블로그에서 소개글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 알았는데, 읽고 나서는 그 책의 내용이 못견디게 궁금해져 버렸네요. 좋은 책을 찾아내는 안목이 부족한 저는 이렇게 (좋은) 책을 소개 받을 때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날로 근처 서점엘 가봤는데, 조금 놀란 것이 이 책은 아동용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여느 아동용 책들과 마찬가지로, 어른이 읽으면 더 빛을 발하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은 작고, 글씨는 적당하게 크고 행간은 넓습니다. 저는 이것이 문장마다 담긴 이옥의 시선을 잘 드러내주는 의도적 편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하신 분(서정오)은 문자의 옮김에 그치지 않고 아주 쉽게 풀어쓰고 문장에 생생함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렇게 읽기가 수월하고 감정이 살아있는 문장은 번역자의 공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옥에 대한 소개는 책에도 나와있지만, 한국일보 ‘한국 고전문학사 라이벌12’ 이옥 vs 김려 편에서는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네요. 틀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 그리고 사소한 대상에 대한 애정어린 글쓰기가 이옥의 이름이 주목받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과거시험이 요구하는 문체를 거부하고 ‘소품문’(이야기하듯 말하는)을 고집하다가 성균관에서 쫓겨나고, 군역형을 받고 결국 낙향해 농사를 짓는 그의 일생은 어찌 보면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행한 개인사로 인해 그의 진정성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의 글이 조금 일찍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면 우리가 접하는 고전문학의 세계는 좀더 풍성해졌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이옥이 가졌던 삶에 대한 즐거운 시선은 글 여러 곳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현들은 찰나에 불과한 생각을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끝으로 제가 인상깊게 읽은 구절을 몇개 옮겨 봅니다. 이옥은 심생의 목소리를 빌려 사랑의 표현을 가감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답지요. 솔직한 심정을 감추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더 그렇습니다.
-심생과 처녀 편(심생이라는 귀족청년과, 부유하지만 신분이 낮은 처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당장 그 뒤를 따라가 봤지. 바짝 따라붙어 보기도 하고, 옷소매로 슬쩍 스쳐 지나가 보기도 하면서, 한시도 눈을 보자기에서 떼지 않았어…살짝 보니 그 안에 한 처녀가 들어 있는데 참 곱게 생겼어. 뺨은 복숭앗빛으로 발그스름하고 눈썹은 버들잎처럼 곱고, 푸른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는데 분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게 언뜻 봐도 참 절세미인이야.
…그러다 보자기가 휙 벗겨지면서 버들잎 같은 눈과 별 같은 눈동자 넷이 딱 마주쳤지. 그러니 얼마나 놀라고 부끄러웠겠나. 처녀는 얼른 보자기를 거두어 도로 덮어쓰고 막 도망을 갔어.
…”너희들은 오늘 밤 위채에 가서 자라.” 하네. 여자 종들이 둘 다 나가자 처녀는 벽장에서 열쇠를 꺼내어 자물통 채워 놓은 것을 풀더니, 잇따라 뒷문도 열고 나서 심생을 부르는 거야. “도련님은 방으로 들어오세요” 심생은 이러쿵저러쿵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몸이 방으로 들어가 있는데 뭘.
- 가즈랑

#
polarnara
#
그로커
#
그로커
#
가즈랑
덧) 아 아직 미국에 가신 것이 아닌건가 보네요. 방학 때는 한국에 계속 계시는 것인지..^ ^ 2007. 08. 7.
#
히치하이커
음, 그래서 좋다는 겁니다. 으헤헤. +_+ 2007. 08. 7.
#
사은
#
polarnara
찾아보니 근처 시립도서관에 없어서, 인터넷으로 주문해야겠습니다 :) 2007. 08. 7.
#
가즈랑
#
가즈랑
#
가즈랑
#
가즈랑
#
가즈랑
#
Y군
그나저나 이 책이 아동용으로 분류되었다니 상당히 이상하군요. 아무리 근래에 새로 번역이 되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성인문학인 것 같은데 말이죠. 2007. 08. 8.
#
히치하이커
죄송합니다.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입니다. 슬픈 이야기라니...헉. 2007. 08. 8.
#
가즈랑
#
가즈랑